장일원 수필가 서재

柳岸
수필
1948. 8. 9.
광주시 남구 봉선동
































 두번째 신혼여행
HIT : 293 WRITER : 장일원 DATE : 07년08월23일 14시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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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가족이 설 연휴기간에 설악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고등학교 선생인 친구는 설악산을 스무 번도 더 다녀왔다지만 나는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처
 
음 갔었고, 신혼여행을 다녀 온 뒤로 거의 30년이 되도록 가보지 못했다. 이렇게 설악산 가는
 
것이 오래된 이유는 하룻길로는 불가능하였고 직장에 다닐 때의 휴가기간 에는 우선 순위에서
 
줄곧 밀려났기 때문이다.

 장모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설이 되어도 처가를 반드시 가야되는 부담이 없고, 집에 특별히 찾
 
아 올 사람도 없다. 이제 머지않아 아이들도 출가할 것이므로 우리 가족끼리만 여행한다는 것
 
은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그런 정황들이 짐작 가는지 아이들이 더 적극적이다.
 
회사에 미리 휴가를 신청하고, 귀경차량의 홍수와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어떤 도로를
 
타야 될 것인지 지도를 놓고 연구하기도 하고, 3박4일 동안 콘도에서 지낼 물건들을 준비하는
 
등 부산하다. 
 
 결혼식장에서 비행기표를 불쑥 내밀면서 제주공항에 도착하면 차량이 대기하고 있으니 신혼
 
여행을 잘 다녀 오라는 거래처 말을 듣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반대방향인 설악산으로 와 버
 
렸다. 내 의지를 안 거래처에서는 무리한 부탁이 없었고 곧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회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안겨 주고 문을 닫았다. 내 삶 중에 현명한 처신 한가지는 신혼여행을
 
설악산으로 갔다는 것이 되었다. 방 귀퉁이에 걸린 의상대 밑의 갯바위에서 찍은 신혼여행 사
 
진은 유혹을 뿌리치는 용기를 잃지 말자는 다짐도 함께 걸려 있었던 셈이다.

 태백산맥 자락에 들어오자 온 천지가 하얗다. <설악산 눈꽃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린 영동지방은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브레이크가 파열되어 하마터면 대형사고가 날뻔하였던 수학여행의 꼬불꼬불한 비포장 고갯
 
길은 강릉 가는 길에는 없다. 이름이 같은 대관령이지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전혀
 
다른 길이다. 작은 어시장(魚市場) 정도였던 속초는 끝없이 해변을 따라 휘황한 네온사인이 불
 
야성을 이루고, 의상대 밑의 갯바위는 방파제를 만들어 변형되어 버렸다. 권금성에 오르는 케
 
이블카 정거장 부근에는 외국인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에게 말을 건 사람이 오랜만에 한국사람
 
만났다고 한다.

 선녀가 날아 오를 만한 깊은 골짜기여서 이름지어졌을 비선대는 철재구조물을 가득 들여놓은
 
철재보관창고 같아서 선녀를 가둔 새장처럼 보인다. 재만 남아있는 낙산사와 시커멓게 타 버
 
린 홍연암 주변의 소나무 숲은 화마(火魔)의 송장인 양 섬뜩하다. 그러나 예약도 없이 불쑥 찾
 
았던 3층 짜리 나지막한 호텔은 정원수가 높이 자랐을 뿐 이름도 건물도 옛 모습 그대로다.

 곳곳의 변해 버린 모습을 보고,‘옛날에는 이랬는데 이렇게 변했구나’하면 아이들이 자신들은
 
신혼여행지 추억을 더듬는 조연들이냐고 볼멘소리다. 그러나 온 가족이 함박눈 속에 눈싸움하
 
며, 나무 밑둥을 흔들어 가지 위에 얹힌 눈을 머리 위에 쏟아지게 하며, 비선대 가는 길을 함께
 
걷는다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다.
 
 
 어느 부부 모임에서 신혼의 꿈이 언제 깨졌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특별히 다른 것을 느끼지
 
못하여,

 “지금도 그 때 같고… ”,

질문이 아내에게 돌아 갔고 아내의 대답은 이랬다.

 “신혼여행 다녀와서 3일만에…”

 결혼하기 전에는 자신이 집안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결혼하자 모든 일을 자신이 하지 않
 
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설거지할 때 알았고 설거지통에 손을 담그니 눈물이 나더란다.   

 그 어느 날, 속초 해변에서‘하나, 둘, 셋!’을 세며 셔터를 누르자, 갑자기 발길질로 구두를 날려
 
날아오는 구두 짝과 공 차듯이 다리를 올린 아내가 함께 찍힌 사진이 떠올랐다. 신혼여행을 다
 
녀와서 3일만에 신혼의 꿈을 잃어버린 아내를 눈치채지 못했듯이 아내의 내면에는 언제나 일
 
상의 파격을 절제로 누르고 있었는데 눈치채지 못한 게 아닐까.

 운전대를 안심하고 맡길 정도로 훌쩍 자란 큰아이가 촬영한 눈보라 속의 권금성을 오르는 케
 
이블카 사진은 여행 중에 가장 멋진 사진이 되었고, 두 뭉치의 눈과 낙엽 두 잎으로 한쪽 귀를
 
늘어뜨린 귀여운 토끼를 만든 둘째의 재능은 놀랍다. 앞서가는 우리에게 눈 팔매질을 해대더
 
니 손을 다쳤다고 내숭을 떨어 가까이 오게 해 놓고 눈을 뒤집어 씌운 중학생 막내 녀석의 엉
 
큼함은 이미 어린애 수준이 아니다.

 눈 덮인 큰 산, 설악산(雪嶽山)에서 나의 가정이 아내의 억제된 욕구와 절제의 포근함으로 덮
 
여 있었음을 느낀다. 우여곡절의 삶 속에서도 다 자란 아이들과 함께 두 번째로 온 신혼여행이
 
손자들도 함께 하는 세 번째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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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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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의 오른 손
 양갱과 호두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