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원 수필가 서재

柳岸
수필
1948. 8. 9.
광주시 남구 봉선동
































 햇살과 나무와 나, 그리고....
HIT : 367 WRITER : 장일원 DATE : 07년08월23일 14시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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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직했다. 스물 아홉에 들어가 이순의 문턱에서 그만 두었으니 몇 개 월 부족한 삼십
 
년을 근무한 셈이다.

 
 짧지 않는 삶을 훌쩍 살아 버린 인생의 전환기에서 지난 시간을 결산하고 앞으로의 삶을 점검
 
할 필요를 절실히 느낀다. 이제까지 내 삶을 이끌어 주신 분에게 면벽(面壁)하고 앉아 감사 드
 
리고, 일상에 쫓겨 건성건성 지나 버린 구석구석을 반성하고 남은 삶의 인도를 요청하는 것보
 
다 더 중요한 시간이 있겠는가.

 군청에서 운영하는 여섯 평짜리 산막은 양지바른 곳에 있다. 울창한 숲 가장자리에 앞뒤로 축
 
대를 쌓고 지은 집이다. 산막 옆에는 뒷산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등산로가 있다. 관리소에서 함
 
께 올라온 관리인이 욕실 세면기 밑의 타일이 깨진 것은 목재집이어서 마르면서 뒤틀리기 때
 
문이란다. 욕실의 샤워 줄기가 시원찮은 것 외에는 이부자리며 모든 것이 완벽한 주거공간이
 
다.

 안내를 마친 관리인이 휴양림 입구에 있는 관리소로 내려가고 아직도 음지에 하얀 눈이 덮인
 
해발 4백 미터 첩첩 산중에는 햇살과 나무와 나만 남았다.

 승용차에 싣고 온 짐을 내려서 정리하고 방문을 열었다. 나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숲 안
 
개를 뚫고 비치는 오후 햇빛이 찬란하다. 울긋불긋한 색깔이 없어도 빛이란 그 자체만으로 아
 
름다움이다.

 저녁이 되자, 차를 세워 둔 앞마당에 노란 가로등이 켜졌다. 깊은 산 속에 혼자 있는 나를 배려
 
하여 산 아래 관리소에서 불을 켜 주는 성의가 고맙다.

 저녁식사를 하고 따뜻한 요 위에서 책을 보니 스르르 눈이 감긴다. 이따금 돌아가는 냉장고
 
소음이 부담스러워 반대인 방문쪽으로 머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모든 생활소음이 칠흑의
 
어두움 속으로 스며든 깊은 밤이다.

‘드득, 두둑’ 알 수 없는 둔탁한 소리가 집에서 들린다.

 겨울철에 오랫동안 비워 두었던 목재집이 실내가 따뜻하니 뒤틀리는 소리인가 보다.

‘퍽’ 싱크대 너머 밖에서 무언가 육중한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다. 지붕 위에 있던 눈 더미가 미
 
끄러져 내리는 걸까.

 잠시 후, ‘뺙’, 마루를 밟을 때 마룻장 끼리 엇물려서 나는 소리가 난다.

 문 쪽으로 머리를 대고 누워서는 안되겠다. 만약 방문이 갑자기 열린다면 빨리 쳐다보기 위해
 
서라도 문을 마주보고 누어야겠다. 머리를 좀 전과 반대로 누었다.

 팔 다리를 느즈러지게 하며 깊은 잠을 청한다. 막 잠이 드는 순간이다.

 갑자기 섬뜩하다. 무서움으로 온몸이 뻣뻣해 진다. 커튼에 가려 가로등 불빛이 희미한 방안에
 
나 말고 다른 누군가 있다. 물에 젖어 후줄근한 검정 옷을 입은 허우대가 거쿨진 누군가를 느
 
낄 수 있다.
 
아니 대여섯이 더 있다. 이들은 모두 흙탕물에 젖은 흰 옷을 입었다. 방안이 이들로
 
가득 찬 느낌이다. 모두 누어 있는 나를 지켜보고 있다. 숨이 막히고 온몸에 식은 땀이 난다. 그
 
들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저 나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공포에 질려 어떤 행동
 
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 만약 무서워 튀어 나간다면 캄캄한 밤, 깊은 산속에서, 걷잡을 수 없게
 
되리라. 

 노트북을 켜서 찬송가 시디를 틀었다. 장엄하고 맑은 경배의 찬양이 퍼진다. 모든 것들이 소
 
멸됨을 느낀다. 눈을 감고 생각하니 부근에서 가장 양지 바른 곳은 이 산막이다. 지형과 방위
 
로 보아 개발되기 전에는 무덤이지 않았을까.

 
 아침이 되어 방문을 열었다.

 간밤에 꽤 많은 비가 소리없이 내렸다. 어제 저녁 그들이 모두 물에 젖은 후줄근한 차림이었
 
는데 비 온 상황과 맞아 떨어진다.

 부근에 어떤 단서가 있으리라. 아침안개가 자욱한 뒷산을 올라가 보기로 했다. 산막 옆의 가
 
파른 등산로는 비를 머금은 부드러운 부엽토여서 미끄럽다. 차라리 길 아닌 곳이 풀뿌리가 있
 
어서 덜 미끄럽다. 서너 번을 미끄러지면서 겨우 언덕에 올랐다.

 정말 그랬다. 산정상으로 향하는 언덕마루에 일곱 개의 무덤이 있다. 길쭉하게 수북수북 연이
 
어 있는 흙더미가 임시로 만든 묘임을 금방 알 수 있다. 무덤 마다 아무런 표시도 없다. 짐승의
 
뼈를 쓸어 모아 놓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어제 저녁 그들이 흙탕물에 젖은 옷을 입었던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듯이 무덤의 봉분이 저 정
 
도인데 깊이야 오죽 하겠는가.

 우리가 육신을 남기고 죽는 것은 자신의 육신이 존귀하게 취급 되어지리라 기대하기 때문이
 
다. 그러나 그 육신에 대해 책임질 사람들의 형편이 어디 한결 같을까. 삶에 쫓겨서, 일에 쫓겨
 
미루다가, 자기만이 아는 사실들을 다음 세대에 미쳐 알려 주지 못하고, 또는 갑작스런 변고로
 
세상을 홀연히 떠난다면‘무연고’가 되리라. 설령 세대로 세대를 거쳐 관리가 잘 이어진다 한들
 
남은 자들에게는 부담으로 남지 않은가.

 살아 있는 동안 남보다 지식이 많고 용기가 더한들 무엇하랴. 숨이 끊어지면 아무런 가치도
 
없다. 존귀함도 없다. 한 무더기의 흙더미일 뿐이다.
 

 그 날 저녁에도, 그 다음 날 저녁에도 이따금 그들이 지켜 보고 있음을 느낀다.

‘사람은 살아 있음이 바로 가치 아닌가.`

 `그대들과 내가 다른 것은 숨을 쉰다는 것 뿐, 호흡이 끊어지면 그대들과 다를 게 없지 않은
 
가.’

 삶을 잃고도 육신에 매인 그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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