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원 수필가 서재

柳岸
수필
1948. 8. 9.
광주시 남구 봉선동
































 오해
HIT : 215 WRITER : 장일원 DATE : 07년08월28일 10시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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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겨울은 대설주의보다, 대설경보다 하면서 예년보다 눈도 많고 춥다. 정원의 소나무와 향
 
나무도 이번 겨울추위가 매년 겪는 통과의례 정도가 아닌 듯 초록 잎 끝이 인고(忍苦)의 속내
 
인 양 누런 기가 돈다.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아 의기(意氣)의 표상인 소나무도 예전 잎이
 
아닌데 얼마 전까지 자작나뭇과 낙엽활엽교목인 작은 소사나무는 겨울이 깊어 가는데도 녹음
 
을 자랑하고 있었다. 책상 귀퉁이에 놓여 있는 이 나무는 달력을 새해 치로 바꾸고 부터 노란
 
잎이 알아보게 많아 진다 싶더니 소한(小寒)이 며칠 지난 오늘 아침에는 샛노란 보자기를 씌어
 
놓은 듯 하다.   

 “죽은 거 아닙니까?”

  나이보다 열살 쯤 더 들어 보이는 대머리 직원이 다가 와 전잎처럼 마른 잎 하나를 따면서 하
 
는 말이다.

 “겨울인데도 물을 자주 준다 했더니….”

 내가 사나흘 만에 한 번씩 주는 물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 성 싶다.
 
  이 나무가 내 곁에 온 것은 연녹색의 잎이 막 돋아 나기 시작한 지난 해 늦봄이다.  근무처 이
 
동이 있자, 나이 많으신 집안 어른이 꽃집에 배달을 시키지 않고 손수 빨간 리본을 달아서 사
 
무실에 들고 오셨다. 책상에 놓인 지 보름 쯤 지나자 연녹색의 순이 주체 못할 정도로 돋아 나
 
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새 순이 한꺼번에 자라면 칙칙한 잔가지로 인해서 나무 모양을 버릴
 
것 같다. 이후에 나오는 순만 키울 요량으로 손가락 마디 만큼 자란 새 순을 모두 따 버렸다. 그
 
러나 기대와는 다르게 줄기차게 나올 줄 알았던 새 순이 그 후로는 나오지 않은 것이다.  지금
 
의 가지는 이런 내 무지로 인해서 지난 봄에 나온 새싹의 가지는 하나도 없다.

 분재관리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내 딴에 물주기에 열심이었던 이유는 가져 온 어른에 대
 
한 고마움과 오직 일 년에 한 번 있는 번식의 기회를 막아 버린 나무에 대한 미안함이 곁들여
 
있었다. 간혹 어떤 이는 전문가나 된 듯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분재를 꼼꼼히 살피고 나서 나
 
무보다 분(盆)값이 더 나가겠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비록 다른 사람의 눈에는 신통치 않아 보
 
이더라도 회백색의 굵은 밑동 아래는 뿌리가 들어나 보이고 고목처럼 거친 몸통에 잎이 촘촘
 
히 매달린 잔가지가 어우러져서 나 보기에는 멋 있다.  

  겨울이 깊어 가고 새해가 되어도 무성한 잎이 여전히 푸르자, 곧 봄이 될 터인데 싱싱한 잎이
 
붙어 있으면 새싹이 어떻게 돋아 날까 은근히 걱정스럽기까지 했는데 오늘 출근하여 보니 잎
 
이 모두 노랗게 변한 것이다.
 
 
  “죽은 게 아니고 단풍인데….”

  대머리 직원은 내 말에 아랑 곳 하지 않고, 비로소 분재관리가 잘못 되었음을 증명할 기회가
 
왔다는 듯, 이왕 죽었으니 거칠 게 없다는 듯 제법 굵은 가지 하나를 꺾는다.

  뼈처럼 하얀 속 가지를 싸고 있는 연두색 내피(內皮)가 선혈처럼 선명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았을 동료직원도 죽었다고 단정할 정도라면 사무실을 방문하는 고객은 물어보나마나다.

 얼마나 게으르면 눈 앞의 나무를 말라 죽게 두었을까?  잎이 노랗게 말라 죽은 나무를 보면서
 
책상 주인을 다시 쳐다 볼 게 뻔하다. 밖으로 내 놓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도 무심한 내 성격과
 
바쁜 일과로 미루어 보아 눈에 띄지 않으면 말라 죽어도 모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의
 
일 년 동안 가까이 두었던 생명을 다른 때도 아닌 영하의 추운 겨울철에 밖으로 내 보낸다는
 
게 차마 못할 짓이다.

 소사나무 분재의 멋은 봄의 연초록 잎,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나목(裸木)이라고
 
하지 않는가. 바깥에 둘 수 없다면 계절에 맞게 나목을 만들자.

 노란 잎은 손이 스치기만 해도 제 풀에 쏟아지지만 노란 잎 사이에 하나씩 끼어 있는 초록 잎
 
은 가지가 휘어지도록 잡아 다녀야 ‘톡!’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떨어질 때 나는 소리가 마치 ‘아야!’하는 비명 소리 같다.
 
아파하는 초록 잎은 그대로 두고 노란 잎만 따 낸다.

 노란 잎은 없고 초록 잎 몇 개만 깃발처럼 달고 있는 모습이 털 빠진 장닭 꼴이다. 눈발이 내리
 
는 창 밖을 보니 은행나무와 모과나무가 들여다보고 서 있다.

 그들이 삭풍 속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한다.

 
 “제발, 우리 옆으로 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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