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원 수필가 서재

柳岸
수필
1948. 8. 9.
광주시 남구 봉선동
































 알 수 없는 것
HIT : 270 WRITER : 장일원 DATE : 07년08월28일 11시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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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람 소리에 잠을 깼다.  새벽 다섯 시다.

 일어나서 앉자 ‘싸-’하게 불안한 기운이 가슴 밑을 스쳐 지난다.

 왜 이럴까?  가끔 이렇게 야릇한 걸 느낄 때가 있다. 이런 날은 틀림없이 그 날 중으로 내뱉는
 
숨결이 단내가 날 정도의 힘든 일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마음 밑바닥에 느껴지는 강도에 따라
 
그 날에 일어날 어려운 일의 정도를 짐작케 한다. 어떤 것에서 문제가 발생할까? 

 주변의 문제될 부문을 생각해 본다. 타고 가는 비행기가, 아니면 고속버스가, 가정에, 직장에,
 
…,  어떤 것일까?  미리 대비책을 마련해 보고 싶다. 여러 부문을 생각한다. 그러나 하면 할수
 
록 더욱 불안 해진다.

 문제될 것을 미리 예측 해 보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경험에 의하면 미리 예측한 부문 에서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었다. 그래서 액땜하듯 많은 부문을 생각하려고 애써 본다. 

 잠시 후, 생각이 같은 곳에 맴돌며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포기하고 만다. 다가올 일을 나는 알 수 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닥쳐 오는 상황에 무방비
 
상태인 채로 부딪힐 수 밖에-.
 
 오전 11시, 서울에서 회의가 있다.

 어제 저녁 <9시뉴스>에서 초대형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지난 번 태풍처럼 이번에도
 
대한해협을 빠져 나갈 것으로 예상된단다. 호남지방은 태풍의 가장자리에 위치하지만 위력이
 
워낙 세서 강풍경보를 내린다고 했다. 어제 저녁 일기예보가 예사스럽지 않아 자고 일어나서
 
결정하기로 했다.

 회의에 대려면 비행기든 고속버스든 빨리 결정을 해야 한다.그러나 처음부터 고속버스는 내
 
키지 않았다. 네 시간 후 서울에 도착하여 다시 지하철을 타야 된다. 또한 환승하기 위해 수 많
 
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한다. 빠듯한 시간 속에 한 시간에 걸쳐 서툰 길을 이동한다는
 
게 진땀 나는 일이다. 비행기를 이용하면 시간 여유가 있고 지하철을 한 번만 타면 회의장으로
 
바로 갈 수 있어 좋다. 문제는 강풍경보 속에서 비행기가 이륙 하겠는가 이다.

 비행기는 이륙했다. 불안정한 기류 사이를 요동 치며 날아간다. 태풍의 끝 자락임을 증명이라
 
도 하듯 종이비행기처럼 흔들린다. 착륙하겠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비행기가 서서히 하강한
 
다. 비를 쏟고 있는 짙은 구름을 뚫고 내려오니 멀리 보이는 지평선이 어깨 높이다.

 구름에 가려 활주로의 남은 길이를 잘못 판단했을까? 착륙하려던 비행기가 갑자기 굉음을 내
 
며 급상승한다. 불안을 느끼며 ‘새벽의 불안’이 이것일까 반추할 겨를도 없이 비행기는 곧 평형
 
을 유지한다. 공항을 한 바퀴 선회하고 나서 무사히 착륙했다.

 지하철을 탔다. 회의장 위치가 충정로이지만 서대문 역에서 내려야 한다. 일 년에 두서너
 
번 올라 와서일까. 언제나 주소만 생각하고 한 정거장 앞인 충정로 역에서 내려 버린다. 이번
 
에도 출구까지 나와 보고서야 잘못 내린 줄 알았다. 계단을 되짚어 내려가면서 회의시간에 늦
 
지 않을까 시계를 본다.‘새벽의 예고’가 이것일까. 내 숨결로 보아 이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회의는 창립총회 답게 규약을 제정하고 임원도 선출했다. 그러나 빠진 게 있다. 이제 막 조직
 
하는 기구가 특정작물의 발전을 위한 협의체라면 우리의 의견을 제시하여야 한다. 침묵한다면
 
기구가 무의미하다.

 나의 상황인식이 잘못된 걸까. 오늘은 단지 기구만 결성하고 의견 제시는 다음에 하자고 한
 
다. 그러나 회의가 끝난 후, 참석했던 기자들이 내 발언이 시의 적절하였다고 하는 것으로 보
 
아 ‘새벽의 예감’ 은 이것도 아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섰다. 올라 온 일은 모두 마친 셈이다.
 
오후 두시이다. 타고 갈 비행기는 일곱 시여서 시간이 충분하다. 모처럼 서울에 와서 시간이
 
남으면 시집보낸 딸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처럼 <교보문고>에 들른다. 얼마 전 출판한 책의 재
 
고가 어찌 되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왜 이혼을 했는지?  뇌출혈 후유증은 많이 나았는지?  무슨 일을 하고 지내는지? ’

 그의 삶의 형태와 모습이 싫지만 중학교부터 친구이어서일까. 그의 처지가 곤궁한 몇 년 동안
 
형제처럼 애틋한 정이 간다.

 서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것저것 신간서적을 보고 있을 때 그가 왔다. 서점부근의 찻집에서
 
서로 궁금했던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눈다.

 다섯 시가 되었다. 저녁식사를 혼자 하기 싫다며 이르지만 함께 하자고 한다. 식당으로 자리
 
를 옮겼다. 식사를 마치고 시계를 봤다. 다섯시 사십 분이다.

 아차차. 김포공항에서 서대문까지 사십 분 정도 걸린다. 여기는 그보다 훨씬 더 올라온 위치
 
이다.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한 시간 이십 분의 여유로는 어림
 
없을 것 같다. 식당을 나와 뛰다시피 걸어 <종각>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도중의 환승 역은 사
 
람도 많고 통로는 좁고, 멀다.

 겨우 <김포>에서 내렸다. 자동보도 위를 숨이 턱에 닿게 달려 공항건물에 들어섰다. 일곱시
 
오분 전이다. 이층 탑승장 입구는 모두 탔는지 경비원만 서 있다. 경비원이 나를 발견하고 빨
 
리 오라고 손짓한다.

 들어가려는데 누군가 크게 부르는 소리가 있다. 저 멀리 자동계단을 막 올라온 그가 손을 흔
 
들고 있다. 뇌출혈 후유증인 마비증상이 풀리지 않은 불편한 몸으로 줄곧 따라 왔나 보다. 

 그래, 오늘 새벽 마음 밑바닥을 파동 치며 지났던 그것은 바로 이 상황을 예고하고 있었다.

내 숨결에서 단내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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