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원 수필가 서재

柳岸
수필
1948. 8. 9.
광주시 남구 봉선동
































 벌초
HIT : 26 WRITER : 장일원 DATE : 18년01월01일 18시34분
ㆍ출처(Link) : http://blog.naver.com/c1wons/30147747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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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초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매년 추석이 달포 정도 남으면 그때부터 어김없이 찾아오는 두통이다. 벌초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다. 산소가 멀리 있는 것도 아닌데, 하루만 마음먹고 하면 되는 일인데, 해마다 추석이 다가오면 벌초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제대로 위치를 알 수 없는 산소는 몰라도 조부모님, 선친, 형님의 산소는 벌초해야 한다. 결혼 후에도 네 분 산소를 근처 마을에 사는 육촌형을 비롯한 그 동생들이 해 주었다.

결혼하고서도 그대로 맡겨 둘 수는 없는 일이다.

 

벌초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농촌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어릴 적 왼팔 관절이 겹질린 것을 이웃집 어른이 잘못 맞춰서 팔 힘이 오른팔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신체 결함 탓에 왼손으로 풀을 잡고 베야 하는 작업을 긴 시간 계속할 수 없다.

방법은 애초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익숙지 않은 애초기를 사용하는 일은 겁나는 일이다. 애초기의 굉음은 그만두고라도, 들고 있기조차 버거운 무섭게 회전하는 날이 달린 봉을 휘젓는 작업이란 위험천만하게 보인다. 그리고 날에 부딪혀 튀는 돌 파편과 잘려나가는 나뭇가지 조각으로, 또는 벌집을 건드려서, 뱀에 물려서, 이 무렵에는 벌초작업에 따른 사고로 병원의 응급환자가 급증한다지 않는가.

 

 벌초할 때가 다가오면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는 이유는 뙤약볕 아래서 위험한 애초기를 다룰 일과 책상물림이 풀과 잡목 사이에서 일상과 다른 생경生硬한 작업을 해야 하는 부담 때문인 듯하다.

 

 

지금처럼 벌초를 전문으로 대신해주겠다는 곳이 없던 시절인 어느 해, 농촌의 금융기관에서 근무하는 내게 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림잡아 세어보니 한 면面의 묘소가 오천 기基 정도인 것 같다. 그 많은 묘소에서 도시로 떠난 사람 중에 추석이 가까워지면 고향에 있는 산소 벌초하는 일로 나처럼 머리 아픈 사람이 한둘이겠느냐는 것이다.

 

의향조사를 했더니 농촌에 살면서도 일손이 없어 벌초의 부담을 안고 사는 사람이 꽤 많아 보인다. 벌초를 대신하는 산소관리 사업을 시작했다. 의뢰하는 묘소의 관리카드를 만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성묘 오도록 벌초 후의 사진도 보냈다.

 

그해 가을, 추석이 지나고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 간 나이 지긋한 분이 찾아왔다. 자신의 작은할머니의 산소를 아들에게 알려 줄 길이 없었는데 관리를 맡기면 자신이 죽은 뒤에라도 이곳에 와서 물으면 확인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관리카드가 있으니 가능할 일이다. 자칫 무연고 될 묘소를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도 생긴 것이다.

 

이렇게 전국 최초의 산소관리 사업이 생겨났다고 이듬해에는 사례발표로 바쁜 한 해가 되었다.

 

 

관리해야 할 선조들의 산소가 흩어져 있어 한 곳으로 가족묘역을 조성해야 하였기에 그 동안 묘역의 형태를 살피던 중에 가장 마음에 든 게 있다. 평편한 흑백의 돌과 매끄러운 조약돌로만 꾸며져 있어 엄숙한 분위기와 함께 무엇보다 벌초라는 위험한 작업과 관리비가 소요되지 않은 묘소를 발견한 것이다.

지금은 낯설지만 세월이 지나 주변에서 자주 눈에 띄면 괜찮아질 것이다. 유행이란 그런 게 아닌가. 누군가가 실용과 편리를 좇아 먼저하고 다른 사람도 같은 이유로 좇다 보면 보편화 되는 게 유행일 것이다.

 

무엇보다 가족묘역이란 한번 조성되면 몇 대까지 가는 건데 관리에 따른 노력이나 위험을 후대後代에게 안겨 준다는 것은 차마 못 할 짓이다.

 

 

수 년 전 가족묘역을 새로 조성하게 됐다. 깊은 곳에 있어서 나 혼자로서는 관리를 포기했던 큰집과 자손들이 멀리 살아서 묘소를 찾지 않는 작은집의 묘소까지 모두 열 분, 여덟 기다.

 

보아두었던 묘소의 사진을 내보이며 내 의견을 말한다. '일곱 달 아래 동생'이 단호하게 말한다.

“내가 벌초할 테니 잔디로 하자고!”

답답한 일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자신이 벌초하겠다는데 어쩌랴. 묘역이 조성된 후, 말대로 하겠다고 나서지 않아 몇 년을 더 하다가 부득이 외국에 나가게 되어 넘겼다.

 

 

추석을 한 달 여 남겨 둔 어제, 군대 간 막내가 다음 주에 휴가 온다고 카톡이 왔다. 막내에게 추석 전에는 벌초라는 행사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올해는 내가 해야겠다.

문자를 보냈다. 말은 못하지만 힘겨워하고 있을 게 뻔하다.

“올해는 벌초, 내가 할 테니 참고하게나.”

 

 

아니나 다를까.

벌초한다고 생각하니 그 지끈거리는 두통이 다시 시작됐다. 벌초를 마치기 전까지 이렇게 계속 아플 것이다. 문제점과 개선의 방법을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한 채로 다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애초기와 보호 장비를 새로 샀다.

몇 년 전에 비해 많은 것들이 개선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막내에게 애초기 다루는 요령과 주의사항을 단단히 일러야겠다.

나도 잘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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